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덕구리, 이곳에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자연 용출 온천이자 사계절 모두 사랑받는 ‘덕구온천’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온천욕을 하기 위해 찾지만 사실 이곳에는, 더 깊고 시원한 풍경이 숨겨져 있다. 바로 ‘덕구계곡 온천 상류’이다.
여름 한가운데, 땀과 열기로 지친 일상을 뒤로하고 이 계곡을 따라 걷는 경험은 단순한 더위를 피하기 이상으로 의미를 갖는다. 이번 글은 덕구계곡 상류로 향하던 날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울진이라는 공간이 선사하는 고요함과 감각적인 여정을 적어본다.
온천에서 시작되는 여정
덕구온천단지는 여느 휴양지처럼 사람들로 북적인다. 온천욕을 즐기러 온 이들, 숙박을 위해 머무는 가족 단위 여행객, 건강을 목적으로 찾은 중장년층까지 다양한 이들이 이곳에서 머문다.
그러나 필자는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상류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온천단지 뒷길, 잘 정비된 탐방로를 따라가면 이내 콘크리트와 타일의 세상은 곧 사라지고 계곡과 숲, 그리고 냉기가 서린 공기만이 주변을 채운다.
이 계곡은 ‘물’을 중심으로 구성된 공간이다. 발밑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차갑고 맑으며, 그 수온은 한여름에도 10도 전후를 유지한다. 물소리는 규칙적이면서도 단조롭지 않다. 걷는 동안 이 계곡의 리듬은 점점 사람의 걸음에 동기화되어 자연스럽게 속도를 늦추게 만든다.
계곡을 따라 오르며 마주친 것은 거대한 바위 위에 앉아 말없이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는 한 노부부였다. 그들의 뒷모습은 말없이 공간과 하나가 되어 있었다. 그 앞을 지나가는 나 역시 이곳이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머무름의 장소’임을 실감했다.
상류로 갈수록 깊어지는 침묵
온천에서 멀어질수록 사람들의 소리가 줄어든다. 그 빈자리를 물소리와 바람소리가 가득 채운다. 상류로 향하는 길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점차적으로 깊은 숲으로 들어가게 된다.
특히 여름철 오후, 햇빛이 숲 그늘 사이로 스며들 때의 풍경은 그 자체로 숨이 멎을 만큼 고요하고 서늘하다. 공기는 축축한데도 불쾌하지 않고, 냉기와 습기가 동시에 감도는 그 환경은 마치 계곡이라는 자연이 몸을 감싸주는 듯한 느낌을 준다.
상류에는 온천 원탕이 있는 지점이 있는데 여기서부터는 더 이상 온천수가 펄펄 끓어오르는 것이 아니라, 차갑고 깨끗한 물줄기가 얇게 바위를 타고 흘러내린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 상태 그대로의 물길은 더위로부터 달아난 사람들에게 가장 정직한 휴식을 제공해준다.
그곳에서 잠시 발을 담갔다. 놀랍도록 차가운 물은 피부를 순간적으로 움츠리게 했지만 이내 몸이 그 감각을 받아들이고 머릿속까지 깨끗하게 정화되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사람의 언어가 필요 없는 공간. 이 계곡 상류는 오롯이 감각으로 존재하는 세계였다.
울진, 바다와 계곡 사이에서 마주한 풍경의 전환
덕구계곡의 여정을 마친 뒤, 나는 울진읍 쪽으로 향했다. 계곡과 온천, 숲의 고요함이 차창 밖으로 사라질 무렵, 동해의 수평선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울진은 깨끗한 바다와 산이 극적으로 맞닿은 도시다. 덕구계곡이 주는 내향적인 정서와 죽변항 근처 해안도로에서 마주한 수평선의 확장감은 상반되면서도 묘하게 이어진다.
도시는 여전히 조용하고, 사람보다 바람이 먼저 움직인다. 특히 여름의 울진은 관광지로서의 과장됨보다는 자연의 질서 속에서 흘러가는 ‘진짜 여름’을 보여준다.
덕구계곡 상류에서의 시간은 나를 더디게 만들었고, 울진의 바다에서는 그 더딘 감각이 다시 확장되어 깊은 호흡으로 이어졌다.
울진이라는 공간은 하나의 단일한 테마로 규정할 수 없다. 계곡에서 시작된 여정은 마침내 바다로 이어지며 여행이라는 것의 본질을 되묻는다. 속도보다 방향, 정보보다 감각, 사진보다 기억이 더 오래 남는 여정이었다.
여름, 가장 시원한 곳은 가장 조용한 곳이었다
덕구온천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찾는 여름철 인기 여행지이다. 하지만 그 온천단지의 뒤편, 사람이 적고 소음이 없는 계곡 상류에는 정말로 여름을 이겨내는 법이 숨어 있다.
시원함이란 단순히 낮은 온도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깊은 침묵, 자연의 리듬 속에 나를 동화시키는 과정, 그리고 아무 말 없이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며 잠시 멈출 수 있는 용기, 이 모든 것이 진짜 ‘시원한 여행’을 만든다.
울진은 그런 여정을 가능하게 해주는 몇 안 되는 공간 중 하나이다. 산과 바다, 숲과 계곡, 온천과 항구. 그 각각의 결이 다르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이곳에서 이번 여름, 무언가를 소비하기보다는 자신을 가만히 안아줄 수 있는 장소를 찾고 있다면 덕구계곡 상류와 울진을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