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140

제주 선녀와 나무꾼 뒤편 (협곡의 입구, 음향, 사유의 시간) 제주 제주시 오등동 일대에 '선녀와 나무꾼'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복합 문화공간이 있다. 많은 이들이 이곳을 카페와 정원, 복고풍 포토존을 즐기기 위한 여행지로 알고 있겠지만 사실 이 공간의 진짜 매력은 그 뒷편으로 조용히 이어지는 협곡형 숲길에 존재한다.이번 글은 정식 안내문에도 등장하지 않고, 대부분의 방문객이 지나치고 마는 '선녀와 나무꾼 뒤편 협곡길'을 중심으로, 직접 걸으며 체감한 지형의 밀도, 공기의 흐름, 그리고 감각의 이완을 경험한 내용을 공개한다. 협곡의 입구를 지나다선녀와 나무꾼 테마공원의 공식 출입구를 지나 실내 전시관과 외부 정원을 통과하면 복고풍 조형물과 벤치, 포토존이 이어지는 길이 나타난다. 그러나 대부분의 방문객이 이곳에서 발길을 되돌리지만, 왼편으로 낮은 울타리 너머 비포장.. 2025. 8. 7.
전남 구례 피아골 (지리산 계곡, 물아래, 침묵의 설계)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지리산 국립공원의 한쪽 끝자락을 따라 길게 뻗은 계곡이 있다. 그 이름은 피아골이라는 곳이다. 흔히는 단풍 명소로 더 알려져 있는 곳이지만, 사계절 내내 이 계곡이 지닌 감각은 색이 아니라 온도, 경치가 아니라 깊이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이번 글은 여름 한가운데, 7월 말의 무더위 속에서 피아골을 천천히 걸으며 발 아래 물의 흐름과 바위의 감촉, 그리고 바람이 피부에 닿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여행이 아닌 머무름으로 경험한 그 순간들을 기록한 것이다. 지리산의 틈에서 흐르는 계곡피아골은 지리산 주능선에서 흘러내린 물길이 오랜 세월 침식과 유동을 반복하며 형성한 협곡형 계곡이다. 하동바위, 직전마을, 연곡사 일대를 거쳐 남천과 합류하기까지 약 10km 이상 계류가 이어지며, 이는.. 2025. 8. 5.
전남 고흥 두포해변 (숲과 모래, 모래와 바다의 색감, 쉼) 전라남도 고흥군 동일면 두포리, 그 끝자락에서 마주한 두포해변은 지도에서도 볼 수 없고, 포털 검색에도 그리 많은 정보가 드러나 있지 않은 곳이다. 그러나 정확히 그 점이 이 해변을 다시 찾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이 글은 여름의 끝자락, 8월 말의 평일 오전에 두포해변을 혼자 걷고 머물며 느꼈던 구체적 감각을 중심으로 구성해 보았다. 관광 정보나 소개보다는 풍경이 만들어낸 ‘움직임 없는 경험’을 차분히 기록해 보고자 한다. 숲과 모래 사이를 걷는 길두포해변은 고흥읍 중심지에서 남쪽으로 25분가량 차를 몰고 달려가야 한다.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마지막 2km 남짓한 진입로에 있다. 도로는 서서히 좁아지고, 소나무 숲 사이를 관통하며 한쪽은 들판, 한쪽은 해안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차를 세우고.. 2025. 8. 4.
곡성 압록유원지 (섬진강, 고요함, 자연의 밀도) 전라남도 곡성군 오곡면. 섬진강을 따라 흐르는 이 고요한 마을 끝자락에 ‘압록유원지’라는 이름의 공간이 존재한다. 이 유원지는 관광지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조용하고, 휴양지라고 부르기엔 지나치게 일상적이다.그러나 바로 그 점이 압록유원지를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여름의 한가운데서도 관광객보다 강의 리듬이 더 많이 들리는 이곳에서 나는 ‘여백이 있는 여행’의 의미를 새롭게 배웠다. 섬진강이 휘감는 땅압록유원지는 곡성 기차마을 관광단지나 침곡역과는 같은 지역에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결을 갖고 있다. 곡성읍 중심지에서 남쪽으로 15분 남짓 달리면 섬진강의 흐름이 넓어지는 지점, 그리고 수평선 같은 강변이 펼쳐지는 곳에 이른다.이 유원지는 자연 발생적 쉼터에 가까우며, 강은 그 중심을 흐르되 사람을 중심에 두지 .. 2025. 8. 3.
전남 진도 금갑해변 (금갑해변, 모래와 바람, 고요함)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그 끝자락에 다소 외진 길을 따라가면 ‘금갑해변’이라 불리는 작은 바다가 보인다. 정식 표지판은 존재하지만, 도로에서 그 방향으로 진입하는 순간부터 이 해변이 ‘관광지’와는 조금 다르다는 사실을 감지하게 된다.이번 글은 여름의 초입, 진도 금갑해변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과 그곳에서 마주한 바다의 표정, 그리고 거기에서 만 예상치 못한 정적의 감각을 중심으로 다른 누구의 시선이 아닌, 오직 걷고 머무른 경험 자체를 통해 적어본다. 바다에 도달하는 ‘진짜 거리’금갑해변은 지도로 보면 단순히 해안도로 옆에 붙은 해수욕장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도로조차 굽이치고 끊기며,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지점에서 직접 바다에 닿기까지는 한 번 이상의 길 선택을 요구한다.주차는 공터에서 마무리.. 2025. 8. 3.
경남 함양 상림숲 (신라의 숲, 숲길, 산책 그이상) 경상남도 함양군 중심부, 남계천을 따라 자리 잡은 울창한 숲이 있는데 그 이름은 ‘상림(上林)’이다. 단순한 산책로 이상의 의미를 지닌 이 숲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 숲이자, 오늘날까지 살아 있는 '살아 있는 문화재'라 불릴 만한 역사적·생태적으로 가치있는 숲이라고 할 수 있다.많은 이들이 상림 숲을 가을 단풍철이나 벚꽃 피는 봄에 찾아 오지만, 내가 이 숲을 찾은 때는 한여름이었다. 기온이 35도를 넘기던 8월 초, 햇볕을 피해 찾은 상림숲은 단지 ‘그늘’이 있는 숲이 아니라 냉기와 고요, 시간의 밀도가 감지되는 감각의 공간이었다. 신라의 숲에서 시작된 1,100년의 시간상림 숲의 기원은 신라 진성여왕 9년, 최치원이 함양 태수로 부임하면서 시작된다. 당시 남계천은 범람이 잦았고, 그로 인한 .. 2025. 8.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