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구례 피아골 (지리산 계곡, 물아래, 침묵의 설계)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지리산 국립공원의 한쪽 끝자락을 따라 길게 뻗은 계곡이 있다. 그 이름은 피아골이라는 곳이다. 흔히는 단풍 명소로 더 알려져 있는 곳이지만, 사계절 내내 이 계곡이 지닌 감각은 색이 아니라 온도, 경치가 아니라 깊이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이번 글은 여름 한가운데, 7월 말의 무더위 속에서 피아골을 천천히 걸으며 발 아래 물의 흐름과 바위의 감촉, 그리고 바람이 피부에 닿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여행이 아닌 머무름으로 경험한 그 순간들을 기록한 것이다. 지리산의 틈에서 흐르는 계곡피아골은 지리산 주능선에서 흘러내린 물길이 오랜 세월 침식과 유동을 반복하며 형성한 협곡형 계곡이다. 하동바위, 직전마을, 연곡사 일대를 거쳐 남천과 합류하기까지 약 10km 이상 계류가 이어지며, 이는..
2025. 8. 5.
경남 함양 상림숲 (신라의 숲, 숲길, 산책 그이상)
경상남도 함양군 중심부, 남계천을 따라 자리 잡은 울창한 숲이 있는데 그 이름은 ‘상림(上林)’이다. 단순한 산책로 이상의 의미를 지닌 이 숲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 숲이자, 오늘날까지 살아 있는 '살아 있는 문화재'라 불릴 만한 역사적·생태적으로 가치있는 숲이라고 할 수 있다.많은 이들이 상림 숲을 가을 단풍철이나 벚꽃 피는 봄에 찾아 오지만, 내가 이 숲을 찾은 때는 한여름이었다. 기온이 35도를 넘기던 8월 초, 햇볕을 피해 찾은 상림숲은 단지 ‘그늘’이 있는 숲이 아니라 냉기와 고요, 시간의 밀도가 감지되는 감각의 공간이었다. 신라의 숲에서 시작된 1,100년의 시간상림 숲의 기원은 신라 진성여왕 9년, 최치원이 함양 태수로 부임하면서 시작된다. 당시 남계천은 범람이 잦았고, 그로 인한 ..
2025. 8.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