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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압록유원지 (섬진강, 고요함, 자연의 밀도)

by think0927 2025. 8. 3.

전라남도 곡성군 오곡면. 섬진강을 따라 흐르는 이 고요한 마을 끝자락에 ‘압록유원지’라는 이름의 공간이 존재한다. 이 유원지는 관광지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조용하고, 휴양지라고 부르기엔 지나치게 일상적이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압록유원지를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여름의 한가운데서도 관광객보다 강의 리듬이 더 많이 들리는 이곳에서 나는 ‘여백이 있는 여행’의 의미를 새롭게 배웠다.

 

곡성 압록유원지 섬진강 고용한 모습
곡성 압록유원지 섬진강 고용한 모습

섬진강이 휘감는 땅

압록유원지는 곡성 기차마을 관광단지나 침곡역과는 같은 지역에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결을 갖고 있다. 곡성읍 중심지에서 남쪽으로 15분 남짓 달리면 섬진강의 흐름이 넓어지는 지점, 그리고 수평선 같은 강변이 펼쳐지는 곳에 이른다.

이 유원지는 자연 발생적 쉼터에 가까우며, 강은 그 중심을 흐르되 사람을 중심에 두지 않는다. 특히 이 지점의 섬진강은 수심이 얕고 강변 폭이 넓어 유속도 빠르지 않는 곳이다. 그 덕에 여름철이면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단위의 사람들이 잠시 물에 발을 담그고, 때론 낚싯대를 세운 동네 주민이 느긋한 하루를 보내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그러나 평일 오전, 이곳을 찾는 이들의 수는 극히 적다. 나는 한 여름의 목요일, 압록유원지에 도착했다. 그 시간, 강변엔 단 두 명의 낚시를 하는 사람들과 바람 소리만이 존재했다.

수직이 아닌 수평, 고요하게 퍼지는 여름의 강

압록유원지를 특별하게 만든 감각은 계곡이나 폭포에서 느끼는 ‘수직적인 시원함’이 아니라, 수평으로 길게 퍼지는 ‘정서적 냉기’에 있다. 햇빛은 강하게 내리쬐고 있었지만 강 위로 흐르는 바람은 놀랍도록 차가웠고 시원했다. 나는 신발을 벗고 강변의 작은 모래사장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발밑의 모래는 생각보다 부드러웠고, 어느 지점부터는 짧은 수초들이 발끝을 간질였다.

물이 깊지 않다는 사실은 걸음에 여유를 주었다. 무릎까지도 차지 않는 수심 속에서 나는 어린 시절 개울가를 떠올렸고, 그 기억은 강의 흐름과 겹쳐지며 현재의 감각을 더 풍부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소음이 없다는 것이다. 강의 흐름은 조용했고, 풀벌레 소리와 바람 소리 외에는 그 어떤 인공적인 진동도 들리지 않았다. 그 고요 속에서 나는 내 마음이 얼마나 시끄러웠는지를 거꾸로 깨닫게 되었다.

자연의 밀도

압록유원지에는 정식 매점도, 파라솔도, 예약이 가능한 캠핑사이트도 없었다. 있다면 평상 몇 개, 간이 탈의실, 그리고 흙길 주차공간 정도가 전부였다. 대신, 그 빈자리를 자연의 밀도가 채우고 있다. 강물은 어제와 오늘이 크게 다르지 않고, 나무 그늘은 사람을 선택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라는 것이 이토록 고맙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었다.

나는 작은 돌 하나를 집어 강물에 던졌다. 원을 그리며 튕겨 나간 물결이 천천히 번졌다가 사라졌다. 그 움직임은 내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면서도, 내가 이곳을 바꾸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작은 진동이었다.

압록유원지에서는 ‘존재한다’는 행위 자체가 풍경의 일부가 된다. 이보다 더 조용한 피서지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곡성 압록유원지, 가장 느리게 흐르는 여름의 한 장면

전남 곡성의 압록유원지는 정해진 목적지보다 우연히 도달하는 공간에 가깝다. 섬진강이라는 이름은 수많은 지역과 마을을 지나지만, 그 강이 가장 조용히 호흡하는 장소는 바로 이 압록유원지일지 모른다.

여름 한가운데, 소란함을 피해 찾을 만한 단 하나의 강변을 찾는 이가 있다면 이 유원지는 아주 조용히 그 조건을 충족시켜 줄 것이다.

도착한 순간부터 떠날 때까지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충분했던 공간. 압록유원지는 기록보다 감각으로 남는 여름의 풍경 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