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마을’이라는 단어에서 대다수가 크리스마스, 눈 내리는 겨울 풍경, 붉은 벽돌집을 떠올릴 거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만약 누군가 이곳을 한여름에 다녀왔다면, 그 상상은 다소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 경상북도 봉화군의 깊은 산 속, 작은 간이역 분천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산타마을’은 겨울철 관광지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그것보다 더 많은 매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여름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시기에 도시에서 벗어나 이 마을을 찾았을 때의 감각은 의외로 강렬하면서 동시에 조용했다.
여름에도 시원한 고지대의 마을
분천역은 태백선 상의 작은 역으로, 해발 약 650m 고지대에 위치해 있다. 서울, 대전, 대구 등 어느 곳에서 출발하든 이곳에 도달하기까지는 긴 열차 여정을 감내해야 한다. 하지만 그만큼 ‘시간을 들인 도착’은 이 마을의 조용한 공기와 시원한 온도를 마주하는 순간, 모두 보상받게 된다.
한여름임에도 불구하고 분천역에 내리면 살갗에 닿는 공기가 도시와는 확연히 다르다. 기온이 3~5도 이상 낮게 유지되고, 숲과 계곡에서 올라오는 수분이 공기 중에 머물며 자연스럽게 호흡을 깊게 만들어 준다.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대부분 말수가 줄어들게 되고, 눈앞의 산맥과 붉은 산타 조형물이 어우러진 이질적인 풍경 앞에서 잠시 멈춰 선다.
이 마을은 행사가 없을 때 더 진가를 발휘한다. 여름철, 특히 7~8월의 비수기에는 마을 전체가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는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바람은 나무 사이를 천천히 지나가고, 분천역의 오래된 기차는 낮게 숨을 쉬며 대기 중이다. 기차역과 연결된 작은 광장에는 산타마을의 테마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무성한 초록 사이에서 그저 묵묵히 서 있을 뿐이다.
여름의 산타마을
사실 산타마을이 여름과 어울릴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바로 그 ‘어울리지 않음’이 이 공간의 진짜 정체성이다. 불쾌지수가 높은 7월의 어느 오후, 분천역 산타마을을 걸으면서 느낀 것은 ‘시간을 거스른 공간’이라는 독특한 감각이었다.
길가에는 붉은 산타 모형과 전구 조형물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대형 선물 상자 모양의 구조물은 강한 햇살 아래에서도 묘하게 낡지 않은 채 계절을 초월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이 공간은 무더위를 피하려는 의도보다, ‘정서적으로 피서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된다.
사람이 적고, 웃음소리나 군중이 없을 때, 이 마을은 더 깊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작은 기념품 가게의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나, 산책로를 걸으며 발밑을 바라보는 순간들 속에서 사람은 오히려 ‘계절에서 벗어난 기억’을 떠올린다.
나는 그날 오후 벤치에 앉아 고요한 산타 광장을 바라보며, 어릴 적 한여름에도 크리스마스를 그리며 산타를 기다리던 감정을 떠올렸다. 그 기억은 공간에 의해 재현되었고, 실제 온도보다 더 서늘한 감각으로 다가왔다.
산책길, 기찻길, 그리고 돌아오는 열차
분천역 산타마을의 매력은 역 앞 광장과 테마공간만이 아니다. 기차길을 따라 연결된 산책로는 계절마다 전혀 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 여름에는 특히 녹음이 짙고 그늘이 풍부해 짧은 거리임에도 한참을 머무르게 만든다.
오래된 철길 위에 나무 데크를 덧댄 그 길을 걷다 보면 산과 강, 그리고 낮게 깔린 하늘이 시야를 채운다. 특별한 목적지나 안내판이 없어도 괜찮다. 그저 걷는 행위 자체가 여행의 핵심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산책 후 역으로 돌아와 열차에 오르면 기차가 움직일 때의 진동과 소음은 방금 전의 고요함을 더욱 또렷하게 만들어 준다. 돌아가는 길,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봉화의 산과 강은 마치 자신이 분천이라는 특별한 기억의 한 지점을 지나왔음을 상기시킨다.
열차가 굽이치는 강 따라 움직일 때마다 마음속에는 조용히 쌓인 감정들이 피서라는 단어의 진짜 의미를 다시 정의하고 있었다.
여름, 가장 조용한 산타를 만나는 시간
봉화 분천역 산타마을은 겨울에 붐비는 축제의 공간이지만 여름에는 오히려 본연의 호흡을 되찾는 장소가 되는 것 같다. 사람이 없을수록, 음악이 없을수록 이 마을은 더 많은 이야기를 건넨다.
여름철이라는 계절적 아이러니 속에서, 붉은 산타는 웃고 있지 않지만 그 무표정은 다양한 감정을 떠오르게 만든다. 이곳은 시끄러운 피서지가 아니다. 무더위를 뚫고 도달한 고요한 곳에서 잠시 멈추어 스스로를 돌아보는 장소다.
올여름, 빠른 여행보다 조용한 감정이 필요한 이라면 분천역 산타마을은 한 장의 기차표와 몇 시간의 여정으로도 충분히 찾아갈 수 있다. 그리고 그 여정이 남기는 기억은 단지 계절을 위한 여행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으로 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