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고흥군 동일면 두포리, 그 끝자락에서 마주한 두포해변은 지도에서도 볼 수 없고, 포털 검색에도 그리 많은 정보가 드러나 있지 않은 곳이다. 그러나 정확히 그 점이 이 해변을 다시 찾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글은 여름의 끝자락, 8월 말의 평일 오전에 두포해변을 혼자 걷고 머물며 느꼈던 구체적 감각을 중심으로 구성해 보았다. 관광 정보나 소개보다는 풍경이 만들어낸 ‘움직임 없는 경험’을 차분히 기록해 보고자 한다.
숲과 모래 사이를 걷는 길
두포해변은 고흥읍 중심지에서 남쪽으로 25분가량 차를 몰고 달려가야 한다.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마지막 2km 남짓한 진입로에 있다. 도로는 서서히 좁아지고, 소나무 숲 사이를 관통하며 한쪽은 들판, 한쪽은 해안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차를 세우고 나면 표지석이나 안내판 없이 모래와 숲이 맞닿은 해변이 조용히 펼쳐져 있다. 정돈되지 않은, 그러나 방해받지 않는 해변이 펼쳐진다. 그곳은 ‘정식 해수욕장’의 전형적인 인상을 지우기에 충분한 풍경이었다.
숲과 해변의 거리는 불과 5m 남짓이다. 그 좁은 틈에서 새소리와 파도 소리가 동시에 들리며 햇빛은 소나무 가지 사이로 부드럽게 떨어진다. 그늘의 밀도가 높고 바람은 바다 쪽에서 육지로 천천히 밀려온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조용한 해변’이란 단지 사람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이 목소리를 낼 필요가 없는 공간임을 깨달았던 순간이다.
모래와 바다의 색감
두포해변의 모래는 전형적인 백사장과는 달리 미세하게 진한 회갈색을 띤다. 수분을 머금고 있어 단단하고 보송하기보다 약간의 찰기가 있는 모래이다. 해변을 따라 걸으면 발에 묻은 모래가 쉽게 떨어지지 않고, 파도가 닿는 경계선에는 물결이 다녀간 자국이 선명하게 남는다. 그 자국은 지워지기까지 오래 걸리지만 오히려 그 점이 이곳의 ‘느림’을 더 느끼게 강조해준다.
바다의 색은 맑지만 매우 짙다. 수심은 멀리까지 낮게 유지되며, 파도는 조용하게 단층으로 밀려든다. 그 소리는 일정하며 대화보다 낮고, 새 소리보단 깊게 들린다.
한참을 해안을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걸음이 느려진다. 그 이유는 체력 때문이 아니라 풍경이 사람의 속도를 조절하기 때문이다. 두포해변은 그 어떤 알람도 표지도 음악도 없지만 몸이 알아서 속도를 낮추게 만드는 해안이다.
쉼이 아니라 멈춤
해변의 남쪽 끝자락에는 둥그스름한 바위가 군데군데 놓여 있다. 나는 그중 가장 낮고 평평한 바위 위에 가만히 앉았다. 그 자리는 해수면보다 조금 높았고, 좌우로 시야가 탁 트인 지점이었다. 앉아 있으니 바람이 어깨를 스쳤고 소나무 그늘이 반쯤 얼굴을 덮었다. 그늘의 경계가 움직일 때마다 몸의 온도도 미세하게 바뀌는게 느껴졌다.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감각이 사라졌고, 그저 그 자리에 있다는 모습만이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었다. 두포해변은 쉼을 주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의 시간에서 의도를 거두고 자연의 시간에 편입되도록 사람을 이끄는 해변이다.
전남 고흥의 두포해변은 크게 알려진 해수욕장이 아니지만 관광지로서의 기능도 미약하다. 하지만 그 점이야말로 이 해변을 찾는 단 한 가지 이유가 된다. 이곳은 카페가 없어야 비로소 시야가 열리고, 음악이 없기에 파도의 리듬이 귀에 닿으며, 정보가 없기 때문에 몸의 감각이 전면에 등장하는 곳이다.
두포해변은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지 않아도 괜찮고, 사진을 남기지 않아도 기억의 촉감으로 오래 남는다. 이번 여름, 바다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하지 않기 위한 시간을 갖고 싶다면 두포해변에서 그 목적에 가장 적합한 침묵의 해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