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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해남 해안길(바위밭, 돌과 파도, 수평)

by think0927 2025. 7. 30.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에는  그 이름도 웅장하지만, 실제로 이 지역은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조용하고 평범한 바닷가 마을이다. 그러나 이 마을의 해안길, 특히 남서쪽으로 길게 뻗은 바위밭 구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음’의 깊이를 체감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여름의 풍경을 담고 있다.

나는 작년 8월, 정해진 목적지 없이 해남을 돌다가 우연히 이 바위밭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때 느낀 바람과 빛, 그리고 파도가 바위를 때리는 깊은 소리는 지금도 아주 선명하게 남아 있다.

 

전남 해남 해안길 바위밭 모습
전남 해남 해안길 바위밭 모습

화산면 바위밭의 시작

해남읍에서 화산면 방향으로 차를 몰고 20여 분, ○○해수욕장 같은 표지판은 나타나지 않는다. 도로는 점점 좁아지고, 민가를 몇 채 지나면 길이 끊긴다.

나는 차를 갓길에 세우고, 짐을 최소한으로 챙긴 채 이름도 없는 해안 방향 오솔길로 들어섰다. 길은 흙과 자갈로 이루어져 있었고, 풀잎이 허벅지를 스치며 길을 막고 있었다. 불안했지만, 그 모든 정황이 오히려 ‘누구도 이 길을 알지 못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10분 남짓 걷자 갑작스럽게 시야가 탁 트였다. 그리고 그곳엔 수천 개의 바위가 층층이 쌓여 만들어낸 거대한 해안 바위밭이 펼쳐져 있었다. 이곳은 누구도 걷기 쉽게 만들어놓지 않은 장소였고, 누구도 이 바다를 향해 안내하지 않은 공간이었다.

돌과 파도

바위밭에 들어서자 내가 느낀 첫 번째 감각은 ‘소리’였다. 사방이 고요한 가운데 단 하나, 파도가 바위에 부딪히는 소리만이 규칙적으로 이어졌다.

그 소리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해변에서 듣는 백색소음 같은 파도소리와는 달랐다. 퍽, 쿵, 탁— 날카롭게 바위가 부딪히는 파도소리는 충돌의 감각 그 자체였다.

그날 햇빛은 강했고 바위는 뜨거웠다. 그러나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유난히 차가웠고 그 바람은 피부를 식히고 땀을 마르게 하는 것을 넘어서 정신까지 맑아지게 하는 기분을 주었다.

나는 바위 하나에 앉아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말이 없는 정적의 바다, 그저 반복적으로 바위를 때리는 파도. 이 풍경은 사진이나 영상으로 담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머무는 것으로만 느낄 수 있는 종류의 고요함이었다.

시선이 닿는 모든 것이 수평인 곳

화산면 바위밭의 특징은 시선이 수평이라는 점이다. 바위 위에 앉아 있으면 주변에 그 어떤 인공 구조물도 없다. 파라솔도 없고, 사람도 없고 주변이 고용하다. 간간히 갯바위 낚시꾼이 지나가긴 하지만 그들조차 말이 없다.

바다는 바로 앞에서 숨을 쉬고, 하늘은 아래로 내려앉은 듯 가깝고, 모든 것이 고요한 층위를 이루며 시선을 가로막지 않는다. 그곳에 앉아 있으니 세상이 정지해 있는 느낌이 들었다. 바위 하나, 파도 하나, 그리고 내 몸 하나가 하나의 장면으로 인상 깊게 남아 있다.

내가 그곳에 머무른 시간은 고작 2시간 남짓이었지만 그곳에서의 감각은 도시에서의 하루보다 훨씬 길게 기억에 남아있다.

 

많은 이들이 여름 휴가하면 파란 바다, 흰 모래사장, 카페와 썬베드, 해양레저를 떠올린다. 그러나 해남 화산면의 바위밭은 그와는 정반대의 세계를 보여준다. 이곳에는 시끄러운 사람들도 없고, 인공의 즐길 거리도 없다. 하지만 오직 이곳에만 존재하는 바위의 냉기, 파도의 진동, 바람의 결, 그리고 내가 마주한 고요한 마음이 있다.

이번 여름, 그 어떤 장소보다 조용하고, 그 어떤 여행보다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는하루를 원한다면 지도를 펴고 해남 화산면의 해안 바위밭을 찾아가 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