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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구좌 평대리 (자갈 해변, 새벽바다, 고요한 바닷가)

by think0927 2025. 7. 30.

제주의 동쪽 끝, 구좌읍 평대리라는 곳이 있다. 이곳은 제주시에서 차로 약 40분 거리의 해안 마을로, 최근 몇 년 사이 ‘카페 거리’와 ‘서핑 포인트’로 알려지며 인기를 끌고 있어 젊은 여행자들의 발걸음이 몰리고 있다. 그러나 내가 마주했던 평대리는 그런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날은 7월 중순,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제주 시내를 벗어나 무작정 동쪽을 향해 달리던 중 어느 무명 도로에서 차를 세우고 평대리 바다 쪽으로 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제주도 구좌 평대리 바닷가 모습
제주도 구좌 평대리 바닷가 모습

아무도 없는 바다의 입구를 지나며

평대리 해안도로는 예상보다 조용했다. 카페거리 중심부를 벗어나 남쪽 작은 갈림길로 접어들자 도로는 비포장으로 바뀌었고, 풀숲과 해풍에 말라붙은 흙냄새가 뒤섞여 있는 곳에 좁은 길이 나 있는 곳 조용한 바다 쪽으로 이어졌다.

도보로 5분 남짓 걷자 사람의 흔적이 거의 없는 자잘한 자갈 해변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은 공식적으로 해수욕장으로 분류되어 있지도 않고, 해변 안내 표지조차 없었다.

파도는 잔잔했지만 고요한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 발아래 펼쳐진 바다는 여느 관광지처럼 ‘와’ 하고 다가오지 않았지만 대신 마치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익숙한 느낌으로 조용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새벽의 바다

나는 신발을 벗고 물가에 발을 담가 보았다. 7월의 해는 이미 수평선을 넘고 있었지만 아직도 바닷물은 차갑게 느껴졌다. 수심은 얕았고, 발끝으로 느껴지는 바닥은 부드러운 모래보다 작고 둥근 자갈들로 채워져 있었다.

가끔 발 밑을 미끄러지듯 스치는 해초 조각의 느낌과 정체를 알 수 없는 투명한 해양생물 하나가 이 바다가 살아있음을 말해주었다. 놀랍도록 고요했지만 그 고요함 속에는 미세한 생의 기척이 분명히 존재했다.

햇살은 낮게 깔리고 바다 위로 길게 반사되었다. 그 반사광은 눈을 감고 있어도 이마에 닿았고, 나는 그 빛의 따뜻함과 물의 냉기를 피부라는 경계를 통해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평대리의 바다는 눈으로 보기보다 몸으로 느끼는 바다였다. 그 감각은 정지되어 있었고, 시간조차도 그 자리에 머무는 듯했다.

평대리 바닷가

나는 한참을 그렇게 바다를 바라보았다. 사진도 찍지 않았고, 무언가를 하려 하지도 않았다. 이 바다는 ‘무엇을 하러 오는 장소’가 아니라 ‘그저 머물기 위한 장소’라는 사실을 점점 이해하게 되었다.

근처의 인기 카페에서는 커피와 음악, 사람들의 대화가 넘쳐날지 모르나 이 작은 무명의 해안가에선 단지 바람과 파도 소리만이 진짜 소음처럼 작동했다.

사람들은 여행을 위해 계획을 짜고, 목적지를 정하고, 리뷰를 읽고 평가를 남기지만, 이곳은 그런 모든 과정과 무관하게 그 자리에 존재하는 바다였다. 걸음을 멈추었고 숨이 느려졌으며 말도 줄었다. 바로 그것이 이 바다의 시간에 적응하는 방법이었다.

 

구좌읍 평대리는 분명히 여행지인 곳이다. 그러나 내가 기억하는 평대리는 지도로 찾을 수 없는 작은 바닷가, 관광지의 소음 뒤편에 숨어 있던 고요함이었다. 그곳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바다는 낮은 목소리로 파도를 보내며, 걸음은 목적 없이 움직인다.

이름 없는 해안, 사람이 없던 아침, 발끝에서 시작된 바다의 감각. 그 모든 요소가 올여름의 제주를 아주 조용하게 내 안에 새겨놓았다.

올 여름 제주도를 방문할 예정이 있다면, 관광지에 유명한 곳만 방문했던 당신이라면 이번 여름 제주는 시끄러운 해변과 붐비는 카페를 벗어나 새벽의 평대리를 잠시 걷는 것으로 시작해 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