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충청남도 청양군, 칠갑산 자락 아래 자연휴양림이라는 이름을 가진 숲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이곳은 여름 휴가철 가족 단위 캠핑지로 종종 소개되지만, 내가 찾은 시점은 한여름의 오후였다. 관광객이 뜸한 평일 오후 시간대 햇살은 정점에 올라 있었고 차에서 내릴 때의 온도는 33도에 육박했다.
그러나 칠갑산 자연휴양림의 숲길에 발을 들이는 순간, 온도로 측정할 수 없는 다른 세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이번 글은 그 날, 숲 안을 천천히 걸으며 차가운 습기와 그늘이 만드는 감각을 따라간 기록이다.
그늘이 만드는 시간
휴양림 입구는 잘 닦인 산책로로 연결되어 있다. 목재로 짜인 데크가 이어지고 수종이 다양한 나무들이 울창하게 늘어서 있다.
하지만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그늘의 질감’이다. 일반적인 그늘과는 달리, 이곳의 숲은 나뭇잎 사이사이로 빛이 거의 스며들지 않는다. 그 결과, 발밑에서부터 허공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희미하고 부드러운 채광으로 감싸안는다.
햇살이 없다는 사실이 이토록 안심이 된 적이 있었던가. 그날 나는 그늘 속에 있는 것만으로 하루의 피로가 가시고 있음을 체감했다. 바람은 거의 없었지만 공기 자체가 차가웠다. 물론 실제 기온은 28도 전후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공기엔 산이 저장해 놓은 밤의 냉기와 이끼와 흙이 머금은 수분이 섞여 있었다.
나는 몇 분 후, 이미 땀이 식고 있었고 팔을 타고 내려오는 햇살 대신 숲의 피부 같은 온도를 느끼고 있었다.
천천히 걷는 숲의 리듬
숲길은 그리 길지 않다. 계곡을 따라 완만하게 오르거나 소나무 숲을 관통하는 루트가 준비되어 있다. 나는 계곡 옆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걷기로 했다. 걸음은 어느 순간부터 속도를 잃었다. 아니, 속도를 잃는다기보다 숲의 리듬에 맞춰지는 것 같았다. 사람이 걷고 있다는 사실보다 숲이 숨 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작은 물소리가 이어지고 잎이 흔들리는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대신 주변에는 ‘부재의 소리’가 있었다. 자동차 소리도, 말소리도, 기계음도 없는, 진공에 가까운 정적 속에서 나는 ‘고요’라는 감각이 결코 정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숲이 조용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아주 천천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느림에 동화되면 사람의 시선도, 걸음도, 숨소리도 서서히 숲과 같은 리듬으로 옮겨간다.
그날, 나는 오히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 감각’이 가장 진한 여행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감각으로 기억되는 숲
길 중간쯤, 나는 계곡 옆의 큰 바위 위에 앉았다. 아무 장비도 없이, 그냥 바지 한 벌에 운동화, 그리고 배낭 하나가 전부였지만 그 바위에 닿는 순간, 내 몸 전체가 숲의 일부로 변하는 느낌을 받았다.
바위는 축축했고 그 습기는 옷을 뚫고 스며들었다. 보통은 피해야 할 상태인데 유달리 그 날은 그 감촉이 반갑고 고마웠다.
눈을 감고 있자니 바람이 아주 가끔씩 숲의 아래층을 훑었다. 그 바람은 방향을 알 수 없고 누군가 지나간 흔적처럼 짧고 미세했다. 그러나 그 한 줄기 바람이 이 숲이 살아 있고 움직이고 있으며 내 몸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듯했다.
칠갑산 자연휴양림 숲길은 보여주는 숲이 아니라 느끼게 해주는 숲이다. 사진으로 남기기에는 너무 정적이고, 글로 묘사하기에는 너무 사적인 감정으로 표현이 되지 않는다.
여름, 감각이 낮아지는 곳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름하면 해변이나 계곡을 떠올린다. 하지만 칠갑산 자연휴양림 숲길은 그보다 더 내면 깊숙한 곳의 열기를 식히는 장소다.
이 숲은 피서를 위한 장소가 아니다. ‘피로’를 버리고 ‘서두름’을 잊고 ‘조용히 존재하는 법’을 배우기 위한 장소이다. 숲은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경험하게 한다. 그리고 그 경험은 숫자나 지도, 일정표에는 남지 않지만 몸과 기억에는 오래 남는다.
만약 이번 여름,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조용히 나 자신에게 돌아가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말하고 싶다. ‘칠갑산 자연휴양림 숲길을 걸어보라’고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