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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가의도 (뒷해변, 소리없는바다, 저녁노을)

by think0927 2025. 7. 28.

오늘은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읍, 가의도라는 섬으로 가보려고 한다. 이 섬은 이름만 들어보면 여느 해수욕지나 섬마을 여행지처럼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찾았던 그날은, 가의도 ‘여행지’라기보다는 조용히 누군가를 기다리는 바다의 끝처럼 느껴졌다.

특히 이 섬의 ‘뒷해변’이라 불리는 곳은 지도에도 이름이 없고, 포털 사이트에는 사진 한 장 제대로 올라와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 글은 그 장소를 정확히 설명하기보다는, 그 공간에 ‘머물렀던 시간’을 기록하고자 한다.

 

충남 태안 가의도 뒷해변 모습
충남 태안 가의도 뒷해변 모습

바다로 열리는 조용한 입구

처음 가의도 선착장에서 내린 후, 정식 해변 방향이 아닌 섬 서쪽 소나무 숲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시멘트 포장도로는 어느 순간 끊기고, 이내 자갈과 흙으로 이루어진 오솔길이 시작되었다. 길은 좁았지만 걷는 데 불편함은 없었다. 다만, 길 양옆에서 뻗어나온 소나무와 잔풀들이 몸을 스치고 지나갔고 그 감촉은 이상하게도 불쾌하지 않고 시원하고 좋았다. 오히려 그것이 이곳에 도달하는 유일한 방식처럼 느껴졌다.

10여 분쯤 걸었서 도착하니 풀냄새와 흙내음에 섞여 짠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그리고 갑자기 길이 툭 끊긴 자리에 눈앞에는 아무도 없는 작은 모래톱과 둥그스름한 바위 해변이 펼쳐져 있었다. 이곳이 바로, 가의도의 ‘뒷해변’이었다.

소리 없는 바닷가

여름의 해변은 대부분 시끄러운 곳이 많다. 아무래도 여름 휴양지를 즐기러 오다보니 아이들의 웃음소리, 음악, 파라솔, 튜브, 모래 위에서 달리는 발걸음들이 바다의 고유한 리듬을 덮어버린다. 그러나 이곳엔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발자국조차 찾기 쉽지 않았다. 파도가 치고 있었지만 그 소리는 높지 않았고, 마치 누군가 귓속말하듯 조용히 모래를 쓰다듬고 있었다.

모래는 거칠었고, 갯벌과 섞여있어 발이 약간 묻히는 느낌이 났다. 그럼에도 나는 신발을 벗고 그곳에 발을 내디뎠다. 피부를 타고 올라오는 온도는 낮았고, 습기가 응축된 공기 속에서 그림자조차 무거운 기척을 남겼다.

나는 말없이 바위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 어디에도 인간의 흔적은 없었고,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스스로의 존재가 아주 작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 작음은 두려움이 아니라 안도였다.

해가 기울 때의 장면, ‘아무 일도 없었던 하루’의 완성

해가 조금씩 기울기 시작하자 해변의 색감이 바뀌었다. 햇빛은 붉고 낮게 퍼졌고, 모래 위의 작은 조개 껍데기 하나까지 그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바위 옆에서는 게 한 마리가 몸을 반쯤 내놓고 조심스레 움직였다. 그 움직임조차도 느리고 조용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해변을 따라 걸었다. 파도가 쓸고 간 자리에 남은 미세한 홈, 풀잎 하나의 흔들림, 그리고 바닷바람에 일렁이는 소나무 그림자들만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하루라는 시간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완성시키고 있었다.

그때 느꼈다. 여행이란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을 수 있다.

 

가의도의 뒷해변은 검색해서 나오는 장소가 아니다. 길도 이정표도 명확하지 않고, 주차장도, 화장실도, 음료수 자판기도 없다.

그러나 그 부족함이 이 장소를 완성시키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손대지 않은 바다, 소나무 숲이 그늘을 드리우는 해변, 그리고 말없는 하루를 보내는 공간이다.

이번 여름, 소란스러운 여행보다 조용히 기억될 하루를 계획하고 있다면 가의도 뒷해변은 그 선택에 충분한 답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