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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 몽돌 해변 (숲과 밭, 파도, 섬에서 하루)

by think0927 2025. 8. 2.

충청남도 홍성군 서부면, 그중에서도 ‘죽도’라는 이름의 작은 섬 앞에는 지도에도, 여행 책자에도 거의 등장하지 않는 이름 없는 몽돌 해변이 있다. 그 해변은 썰물 때가 되어야 모습을 드러내고, 들어가는 길 역시 도보로 20분 이상 이어지는 비공식 경로에 가깝다.

그렇기에 그곳은 사람이 적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이다.

이번 글은 그 죽도 앞 몽돌 해변에서 여름 한낮, 두 시간 가까이 머무르며 느꼈던 감각을 기록으로 남긴다. 여행이 아닌 ‘멈춤’의 경험으로 남은 그날의 바다를 문장으로 되살려 보며 몽돌해변에서 바다와는 다름 감각을 선보이려 한다.

 

충남 홍성 몽돌해변 바다모습
충남 홍성 몽돌해변 바다모습

숲과 밭 사이

죽도라는 이름은 섬이지만, 실제로는 간조 시 도보로 건너갈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나는 그 길목을 찾기 위해 서부면의 작은 마을을 지나 임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도로는 중간부터 사라지고 농로로 바뀌었으며, 밭과 숲 사이 작은 갈림길이 몇 번 이어졌다. 그 어느 곳에도 ‘해변’이나 ‘죽도’라는 표식 조차 없었고, 가끔 마을 어르신들이 지나가며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이 전부였다.

20여 분을 걸었을 무렵, 갑자기 바람이 달라졌다. 흙냄새가 염분에 밀렸고, 나무 사이로 바다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바다 앞에 몽돌이 넓게 깔린 해변이 조용히 펼쳐져 있었다. 사람의 발자취가 희미하게 있는 곳, 사람도 길도 없는 그런 곳이 펼쳐져 있었다.

몽돌 위를 지나는 파도

해변에 도착하자 먼저 귀가 반응했다. 몽돌 해변은 파도가 치는 순간 자갈이 부딪히는 소리를 낸다. 사락사락— 혹은, 스르륵— 그 소리는 파도가 밀려왔다가 돌 사이를 빠져나갈 때 생긴다.

나는 그 소리를 듣고 자리에 앉았다. 모래 해변에서는 느낄 수 없는 묵직한 바다의 호흡이었다. 햇빛은 강했고, 몽돌은 햇빛을 받아 표면이 뜨거웠지만 그 밑은 차가웠다. 손으로 돌을 집어 들면 깊은 곳의 냉기가 손바닥에 스며들었다.

그 해변은 아무 장식도 없고, 그늘도 없으며, 인공적인 편의시설은 말할 것도 없이 그 어떤 관광지적 요소도 없었다.

하지만 그 무의미함이 오히려 감각의 순도를 높였다.

섬 앞에 앉아 흐르는 시간

죽도는 눈앞에 있었다. 썰물 덕에 그 앞까지 걸어갈 수 있었지만 나는 해변에 머물렀다. 이동보다 머무는 것이 더 어울리는 날이었다.

조용히 앉아 있으니 모든 것이 뚜렷해졌다. 파도는 낮았지만 일정했고,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이 빛만이 수면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몇 미터 앞, 작은 게 한 마리가 돌 틈에서 나오다 멈췄고 어디선가 흘러온 해초 줄기가 내 발등 옆에 닿았다. 돌은 둥굴고 검고 표면은 부드럽지만 눅눅한 느낌이었다. 발을 담그면 돌들이 서로 부딪히면서 작은 마찰음을 내고 있었다. 

그 모든 움직임이 정적 안에서 울렸다. 바다는 조용했지만 결코 정지되어 있지 않았고, 나는 ‘멈춘 여행’이라는 표현이 이럴 때 쓰일 수 있다는 것을 비로소 실감했다.

 

충남 홍성의 죽도 앞 몽돌 해변은 그 어디에도 정식 명소로 소개되지 않는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이 해변의 가장 큰 매력이다.

걸어야만 도달할 수 있고, 기다려야만 건널 수 있으며, 조용해야만 그 진가를 알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ㅇ다.

이 해변은 무언가를 하러 가는 곳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장소다. 말도, 사진도, 기록도 필요 없다. 단지 그 자리에서 조용히 머무는 것으로 충분히 하나의 ‘여름 여행’이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