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산책길 (오등동, 하례리숲길, 구좌읍 해안절벽)
제주도는 수많은 올레길과 숲길, 해안 산책로를 품고 있지만,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길은 때로 사람의 발길로 인해 그 고유한 고요를 잃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안내문에도, 지도에도, 심지어 일부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도 잘 거론되지 않는 ‘비공식 탐방길’이 있다. 이 글에서는 필자가 직접 걸으며 체감한, 제주의 ‘조용한 비공식 탐방길’ 3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 길들은 모두 표지판 하나 없이, 자연의 결이 스스로 만들어낸 선형을 따라 형성된 곳들이다. 1. 제주시 오등동, 선녀와 나무꾼 뒤편 협곡길오등동 일대의 선녀와 나무꾼 테마공원은 복고풍 정원과 전시 공간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 뒷편으로는 안내문에 등장하지 않는 좁고 긴 협곡이 숨어 있다. 입구는 울타리 너머의 비포장 오솔길로 되어 있으며, ..
2025. 8. 9.
전남 구례 피아골 (지리산 계곡, 물아래, 침묵의 설계)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지리산 국립공원의 한쪽 끝자락을 따라 길게 뻗은 계곡이 있다. 그 이름은 피아골이라는 곳이다. 흔히는 단풍 명소로 더 알려져 있는 곳이지만, 사계절 내내 이 계곡이 지닌 감각은 색이 아니라 온도, 경치가 아니라 깊이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이번 글은 여름 한가운데, 7월 말의 무더위 속에서 피아골을 천천히 걸으며 발 아래 물의 흐름과 바위의 감촉, 그리고 바람이 피부에 닿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여행이 아닌 머무름으로 경험한 그 순간들을 기록한 것이다. 지리산의 틈에서 흐르는 계곡피아골은 지리산 주능선에서 흘러내린 물길이 오랜 세월 침식과 유동을 반복하며 형성한 협곡형 계곡이다. 하동바위, 직전마을, 연곡사 일대를 거쳐 남천과 합류하기까지 약 10km 이상 계류가 이어지며, 이는..
2025. 8.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