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150

전남 해남 해안길(바위밭, 돌과 파도, 수평)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에는 그 이름도 웅장하지만, 실제로 이 지역은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조용하고 평범한 바닷가 마을이다. 그러나 이 마을의 해안길, 특히 남서쪽으로 길게 뻗은 바위밭 구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음’의 깊이를 체감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여름의 풍경을 담고 있다.나는 작년 8월, 정해진 목적지 없이 해남을 돌다가 우연히 이 바위밭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때 느낀 바람과 빛, 그리고 파도가 바위를 때리는 깊은 소리는 지금도 아주 선명하게 남아 있다. 화산면 바위밭의 시작해남읍에서 화산면 방향으로 차를 몰고 20여 분, ○○해수욕장 같은 표지판은 나타나지 않는다. 도로는 점점 좁아지고, 민가를 몇 채 지나면 길이 끊긴다.나는 차를 갓길에 세우고, 짐을 최소한으로 챙긴 채 이름도 없는 해안 방.. 2025. 7. 30.
충남 태안 가의도 (뒷해변, 소리없는바다, 저녁노을) 오늘은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읍, 가의도라는 섬으로 가보려고 한다. 이 섬은 이름만 들어보면 여느 해수욕지나 섬마을 여행지처럼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찾았던 그날은, 가의도 ‘여행지’라기보다는 조용히 누군가를 기다리는 바다의 끝처럼 느껴졌다.특히 이 섬의 ‘뒷해변’이라 불리는 곳은 지도에도 이름이 없고, 포털 사이트에는 사진 한 장 제대로 올라와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 글은 그 장소를 정확히 설명하기보다는, 그 공간에 ‘머물렀던 시간’을 기록하고자 한다. 바다로 열리는 조용한 입구처음 가의도 선착장에서 내린 후, 정식 해변 방향이 아닌 섬 서쪽 소나무 숲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시멘트 포장도로는 어느 순간 끊기고, 이내 자갈과 흙으로 이루어진 오솔길이 시작되었다. 길은 좁았지만 걷는 데 불편함.. 2025. 7. 28.
충남 청양 칠갑산 (휴양림 그늘, 숲길, 감각의 숲) 오늘은 충청남도 청양군, 칠갑산 자락 아래 자연휴양림이라는 이름을 가진 숲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이곳은 여름 휴가철 가족 단위 캠핑지로 종종 소개되지만, 내가 찾은 시점은 한여름의 오후였다. 관광객이 뜸한 평일 오후 시간대 햇살은 정점에 올라 있었고 차에서 내릴 때의 온도는 33도에 육박했다.그러나 칠갑산 자연휴양림의 숲길에 발을 들이는 순간, 온도로 측정할 수 없는 다른 세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이번 글은 그 날, 숲 안을 천천히 걸으며 차가운 습기와 그늘이 만드는 감각을 따라간 기록이다. 그늘이 만드는 시간휴양림 입구는 잘 닦인 산책로로 연결되어 있다. 목재로 짜인 데크가 이어지고 수종이 다양한 나무들이 울창하게 늘어서 있다.하지만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그늘의 질감’이다... 2025. 7. 23.
충북 보은(말티재 숲길, 걷는 숲, 고갯길)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 자락 아래 말티재라 불리는 고갯길이 있다. 예로부터 이 길은 속리산을 넘는 유일한 통로였다고 한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소달구지를 끌며 고개를 넘었고, 순례자들은 속리산 법주사를 향해 이 길을 걸었다.하지만 오늘날 말티재는 더 이상 고생스러운 통과 지점이 아니다. 그 아래 펼쳐진 울창한 숲길이 새로운 의미의 걷는 길이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여름철, 이 숲길은 도시의 열기에서 벗어나 숲으로 도망친 이들에게 ‘냉기마저 머무는 자연의 통로’로 작용한다.이번 글은 필자가 여름철, 습도 높은 오후에 이 숲길을 걸으며 경험했던 정적, 습기, 시원함, 그리고 사색의 순간들을 기억의 흐름대로 기록해보고자 한다. 숲의 온도보다 깊은 ‘감각의 변화’말티재 숲길의 시작은 단정하게 정리된 데크 계단부.. 2025. 7. 22.
경북 울진여행(온천, 상류계곡, 바다)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덕구리, 이곳에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자연 용출 온천이자 사계절 모두 사랑받는 ‘덕구온천’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온천욕을 하기 위해 찾지만 사실 이곳에는, 더 깊고 시원한 풍경이 숨겨져 있다. 바로 ‘덕구계곡 온천 상류’이다.여름 한가운데, 땀과 열기로 지친 일상을 뒤로하고 이 계곡을 따라 걷는 경험은 단순한 더위를 피하기 이상으로 의미를 갖는다. 이번 글은 덕구계곡 상류로 향하던 날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울진이라는 공간이 선사하는 고요함과 감각적인 여정을 적어본다. 온천에서 시작되는 여정덕구온천단지는 여느 휴양지처럼 사람들로 북적인다. 온천욕을 즐기러 온 이들, 숙박을 위해 머무는 가족 단위 여행객, 건강을 목적으로 찾은 중장년층까지 다양한 이들이 이곳에서.. 2025. 7. 21.
봉화 분춘역 여름여행(고지대마을 ,산타마을, 산책길) ‘산타마을’이라는 단어에서 대다수가 크리스마스, 눈 내리는 겨울 풍경, 붉은 벽돌집을 떠올릴 거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만약 누군가 이곳을 한여름에 다녀왔다면, 그 상상은 다소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 경상북도 봉화군의 깊은 산 속, 작은 간이역 분천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산타마을’은 겨울철 관광지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그것보다 더 많은 매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여름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시기에 도시에서 벗어나 이 마을을 찾았을 때의 감각은 의외로 강렬하면서 동시에 조용했다. 여름에도 시원한 고지대의 마을분천역은 태백선 상의 작은 역으로, 해발 약 650m 고지대에 위치해 있다. 서울, 대전, 대구 등 어느 곳에서 출발하든 이곳에 도달하기까지는 긴 열차 여정을 감내해야 한다. 하지만 그만큼 ‘시간을 .. 2025. 7. 20.